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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6 11:16

가던 길 앞에 있으니 아니 갈까···퇴계 따라 걷는 소백산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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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 앞에 있으니 아니 갈까···퇴계 따라 걷는 소백산 자락

                                         
 
소백산 남쪽 자락 죽계구곡의 탁영담. 퇴계의 기록에는 없으나 순흥 부사 신필하는 7곡으로 이른 경승이다. 탁영담은 옛 선비가 갓을 씻은 연못이란 뜻이다.

소백산 남쪽 자락 죽계구곡의 탁영담. 퇴계의 기록에는 없으나 순흥 부사 신필하는 7곡으로 이른 경승이다. 탁영담은 옛 선비가 갓을 씻은 연못이란 뜻이다.

산간 마을은 겨울이 일찍 들었다. 20일 이른 아침 소백산 자락, 겨울이 내려와 있었다. 전날 이 계곡을 오를 때는 가을이었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가을을 데리고 가 버렸다. 낙엽 덮인 전날 계곡이 가을이 저무는 풍경이었으면, 비쩍 마른 아침의 계곡은 겨울이 열리는 장면이었다. 가을을 보내러 왔는데, 겨울을 만나고 말았다. 상관없다. 어차피 세상 따위하곤 멀어지려고 작정한 걸음이었다. 
 
옛 풍수가 소백산을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했던가. 난을 피해 살 수 있다는 십승지(十勝地)가 산자락 어디에 숨어있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퇴계도 이 계곡에 들어와 성리학의 이상향을 꿈꿨었다. 산에 들면 정말 병든 심신을 일으킬 수 있을까.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맵고 달았다. 날이 차서인지 새는 울지 않았고, 젖은 낙엽 밟는 소리가 걸음 내내 따라다녔다. 
 

소백산 자락에 들다

죽계구곡 금당반석. 널따란 바위 위로 계곡 물이 잔잔히 흐른다. 소백산 초암사 앞 계곡에 있다.

죽계구곡 금당반석. 널따란 바위 위로 계곡 물이 잔잔히 흐른다. 소백산 초암사 앞 계곡에 있다.

소백산은 산이 커 길도 많다. 마루금 따라 이어진 주 탐방로 말고도 명승으로 지정된 죽령 옛길, 고치령길·마구령길 같은 험한 고갯길도 여럿 있다. 소백산을 한 바퀴 두르는 소백산자락길도 있다. 2009년 영주문화연구회가 조성을 시작한 소백산자락길은 전체 길이 143㎞에 이르는 대형 트레일이다. 경북 영주와 봉화, 강원도 영월, 충북 단양 등 3개 도 4개 시·군을 지난다. 12개 코스로 나뉘는데, 소백산자락길은 개별 코스를 ‘자락’이라 부른다.  
 
소백산 열두 개 자락 중 첫째 자락을 걸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수서원에서 시작해 죽계를 따라 소백산 깊은 품으로 들어가는 12.6㎞ 길이다. 소수서원의 고졸한 정취와 산 아랫마을(영주시 순흥면)의 넉넉한 풍경을 기대했던 건 진심이나, 막상 걸음을 움직이게 한 건 퇴계 선생이었다. 퇴계 이황(1501~70)이 굽이굽이 이름을 짓고 아꼈던 계곡 길이 첫째 자락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이름하여 죽계구곡이다.  
소백산자락길 이정표.

소백산자락길 이정표.

구곡(九曲)은 유교 문화의 하나다. 성리학 시조 주자(1130∼1200)가 중국 푸젠(福建)성 무이산의 아홉 계곡을 ‘무이구곡’이라 이르고 시를 지어 ‘무이구곡가’라 했다. 조선의 성리학자도 너 나 할 것 없이 주자를 본 따 구곡을 재현했고 구곡마다 시를 지었다. 국어 시간에 배웠던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가’와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이 바로 구곡 문화의 대표 작품이다. 조선 시대에만 150곳이 넘는 구곡이 있었단다. 경북 안동의 세계유교문화재단이 현재 조선 유림의 구곡 문화를 계승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권두현 재단 대표는 “경북 지역에만 46곳의 구곡이 남아있다”며 “구곡은 아름다운 계곡에 이름을 붙이고 시가를 짓는 조선 유림의 풍류이자 문화”라고 설명했다. 
 
퇴계는 고향 땅 도산에서 ‘도산십이곡’을 지었고, 풍기 군수 시절에는 영주의 죽계구곡을 경영했다. ‘도산십이곡’은 원문이 남았지만, 죽계구곡은 전해오지 않는다. 다른 유림의 죽계구곡가는 여러 편 내려오나 퇴계의 죽계구곡은 기록만 있다. 그래도 무연히 걸을 뿐이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쩌겠는가(‘도산십이곡’ 부분).’
 

가던 길 앞에 있거든 

경북 영주 소수서원은 국내 최초 서원이다. 1543년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 성리학을 전래한 안향을 제사 지내기 위해 지었다. 그때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훗날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의 요청에 따라 1550년 국가 공식기관인 사액 서원으로 지정되면서 소수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진 속 정자는 죽계구곡 1곡 취한대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은 국내 최초 서원이다. 1543년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 성리학을 전래한 안향을 제사 지내기 위해 지었다. 그때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훗날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의 요청에 따라 1550년 국가 공식기관인 사액 서원으로 지정되면서 소수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진 속 정자는 죽계구곡 1곡 취한대다.

죽계구곡 1곡은 소수서원에 있다. 소수서원은 신재 주세붕(1495∼1554)이 세운 조선 최초 서원이다. 처음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으나, 훗날 풍기 군수로 부임한 퇴계가 건의해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서원 옆으로 소백산 마루금에서 내려온 죽계(竹溪)가 흐른다. 1곡은 ‘취한대’다. 죽계천 건너편에서 서원을 내다본다.
 
소백산자락길이든, 죽계구곡이든 길은 죽계를 거슬러 오른다. 다만 구곡 표시가 헷갈리게 돼 있다. 앞서 적었듯이 퇴계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나, 곡을 이루는 바위마다 글자가 새겨져 있다. 1728년 순흥부사로 부임한 신필하의 것이다. 영조 연간에 편찬된 ‘순흥지’는 신필하의 구곡이 신재나 퇴계의 구곡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신필하는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며 구곡을 매겼는데, 본래 구곡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취한대 바위에 새겨진 '공경할 경(敬)' 자는 주세붕의 글씨로 전해온다.

취한대 바위에 새겨진 '공경할 경(敬)' 자는 주세붕의 글씨로 전해온다.

영주문화연구회 배용호(69) 이사는 “다른 구곡은 경영한 인물이 한 명이어서 논란이 없는데 죽계구곡은 여러 기록이 전해와 혼란이 생겼다”고 설명했고, 권화자(60) 영주시 문화관광해설사도 “이미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어 영주시나 소백산국립공원도 신필하의 구곡을 무시하진 못한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는 ‘순흥지’의 표기를 따른다. 하여 길에 표시된 곡과 순서가 다르다.
 
이름이 헷갈려도 상관없다. 무어라 불리든 간에 길은 아름답다. 마을을 지나고 사과 과수원을 지난 길은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부터 초암사까지 그늘진 계곡이 이어진다. 개발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어서 태초의 구곡이 고스란하다.
죽계구곡 목욕담. 계곡에 넓은 소가 들어앉아 있다.

죽계구곡 목욕담. 계곡에 넓은 소가 들어앉아 있다.

이를테면 5곡 목욕담은 이름처럼 목욕을 할 만한 소(沼) 여러 개가 들어앉아 있다. 큰 것은 여남은 명이 들어가도 넉넉해 보인다. 소 둘레엔 집채만 한 바위가 누워 있고, 물살은 잠시 숨을 고르는지 잔잔하다. 다시 계곡을 오르니 폭포가 나타나고(7곡 용추), 널찍한 바위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8곡 금당반석), 두 계곡물이 하나로 만난다(9곡 중봉합류). 하나같이 절경이다. 아니 곡이 아니어도 굽이굽이 계곡은 눈길과 발길을 붙든다. 9곡에서 죽계구곡은 끝나고, 구곡 너머 더 깊고 더 높은 산으로 들어가는 숲길이 이어진다. 
가을 끄트머리 혹은 겨울 어귀 소백산자락길을 걸었다. 낙엽 밟는 소리가 걸음 내내 따라왔다.

가을 끄트머리 혹은 겨울 어귀 소백산자락길을 걸었다. 낙엽 밟는 소리가 걸음 내내 따라왔다.

선비들이 구곡을 찾아 소백산을 오른 건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무지렁이 백성은 제 목숨을 지키려고 소백산에 숨어들었다. 이 심란한 시절 소백산 안으로 들어온 건, 그저 가는 계절이 아쉬워서였다고 하자. 이 계절을 무어라 부르든 간에 이즈음의 산은 편안하다. 맨살 드러낸 나무가 우리네 사는 꼴처럼 앙상해서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양껏 숨을 쉬다 내려왔다. 
영주 죽계구곡 지도 [그래픽 세계유교문화재단]

영주 죽계구곡 지도 [그래픽 세계유교문화재단]

 

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가던 길 앞에 있으니 아니 갈까···퇴계 따라 걷는 소백산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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